우리는

2014. 9. 6. 15:36 from My Thinking

서로를 지켜주면 되는 거였다.

물론 내가 그들도 지키고

나도 지킬 수 있었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나는 그럴 여력과 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고

나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들이 나를 지켜주면 되는 거였기에...

 

하지만

그들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혹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지켜주었다.

그런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지켜주려 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나를 지켜줘야 할 때마다

내가 지켜주던 그들도

또 내가 존경하는 사람도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저 보이지 않는 마음만을 알아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나를 지키지 않아서 함께 오해 받았던

아내와 몇몇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등을 돌리겠다는 게 아니다.

여전히 둘 다 지킬 실력은 못되기에

이제는 나를 지키겠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껏 나도 그리고 그들 서로도 지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 서로만은 지켜주길 바란다.

이젠 나도 못 지켜주니 말이다.

 

주변 동역 자들은 그래왔듯 딱 그 정도 일 것이니

서로를 지켜줄 사람은 서로뿐임을 꼭 기억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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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커스 사역에서 은퇴 한후

마음으로는 한달에서 석달정도 홀로 해외에 나가

생각들도 정리하고 새로운 길에 대해 기도도 하고

이런 저런 계획도 세우고 충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주위의 여러 사람이 이제 여러 일들도 내려놨으니 그렇게 하라고

해외에 나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감사하게도 해외에 계신 분들중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나는 사십대 백수가 되었다.

백수란 예전 같이 수입이 없다는 말도 된다.

마커스가 예전부터 돈이 많은 사역단체로 오해를 받곤했는데

그래서 퇴직금과 은퇴 대우를 무지 잘 받았을거란 생각들을 하는 건가? ^^

마커스는 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단체이다. 28명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곳이다.

 

약간의 여유가 있는 재정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바로 닥칠 생활비로 써도 두 달을 못버틸 금액이다.

그리 쉽게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겠는가....

여기저기 예전부터 잡아논 스케쥴을 소화하니 어느새 8월이었다.

아는 분이 감사하게 잡아준 숙소에서 겨우 가족과 2박3일 시간을 얼마전에 보내고 왔다.

 

8월이 다 지나는 이제서야 홀로 3박4일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 왔다.

짧은 충전이다. 짧은 쉼이다.

이게 내 삶의 현실이다.

여전히 나는 마커스 사역 초기와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예전보다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예전보다 분명 재정적으로도 수입은 많아졌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물려주고 떠났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커스 가족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어

12년전 그때보다는 안정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있어 감사하다.

나에게 사랑의 교회 수양관은 분에 넘치는 공간이다.

3박4일간의 홀로 갖는 시간도 충분히 주어진 감사의 시간이다.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내 사십 평생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든든한 아들과 귀여운 딸도 내 옆에 있는데

여전히 함께 동행하는 아내도 있고....

자주 보지 못해도 평생 함께가는 마커스 식구들도 여전하고

 

중요한건

내 하나님, 내 아버지, 내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나는 보이는 건 없지만, 뭘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맘은 편하다. ^^

그리고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앞으로가 왠지 기대된다.

 

예전 사진으로 기분이나 돋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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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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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저렇다 말만 강단위에서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용기있게 행동하지 않는

이 땅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부끄럽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하는지, 성경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고 이루어져야 하는지 몰라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안전한 자신들의 공간에서 한다는 거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고는 교회는 중립을 지켜야한다.

정치적인 색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합니다.
'정교분리' 이는 일제 시대 일본 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또한 침묵은 중립이 아닙니다.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표하는 것이고

현 권력의 불의한 행동에 교회는 항상 침묵으로 동의해왔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든 한 쪽의 입장을 취하게 되어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은 말이 안되는 궤변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안에 침묵을 하시던지요.

예전 일제 시대에 민족성을 지키고 독립을 할 힘과 미래를 준비한 것이

이 땅의 한국교회와 개신교 지도자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혼란스런 여름에 여전히 다음세대와 미래를 위함이 아닌

자신들에게만 익숙하고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사역방식과 내용으로

반복학습만을 하는 똑같은 수련회와 캠프로 여기저기 바쁘셨을 겁니다.

다음세대들의 안목을 더욱 떨어뜨려 세상을 넓고 깊게 보지 못하게 하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신들이 속한 교회 공동체만이 전부인줄 알고 살게끔 만든

교회안에 어른들과 특별히 개신교 지도자들은 철저히 반성과 회개를 해야합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응원하며 특별법 제정에 적극 찬성합니다.
하루빨리 해결이 되길 촉구합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도록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을 강단위에서 밝히고 교회에 촉구해야합니다.

양심을 거스르며 살지 마십시오. 스스로 교인들에게 평가받으십시오.

자신들의 실력과 성숙을 이 땅의 교회안에 드러내고 평가받으십시오.

보여지는 업적과 외형으로 자신들을 감추고 가면을 쓴채 속이며 부끄럽게 살지마십시오.

이미지 관리하며 성도들과 교회 건물안에 더이상 숨어 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앉아서 하나님 보다 자신들만을 위한 행사같은 예배모임에서 벗어나

삶에서 영과 진리로 아버지가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폭력과 혁명이 아닌 진정한 빛으로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이 변화되길 기대하며 저는 촛불을 켭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교회가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과 진리를 아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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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변화되려면 그러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옛 모습인 기존 생각의 틀과 삶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니 말이 안 됩니다.

 

몰라서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알려고 했다고요? 역시 변명입니다.

자신의 방법과 그 틀의 생각 안에서만 알려고 하지 않습니까?

 

대체 변하기 위해 뭘 버렸고, 얻기 위해 뭘 바꿨나요?

당신의 돈과 시간을 어디에 많이 쓰고 있나요?

당신의 중심이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역을 직장처럼 여기고 사는 삶을

이제는 그만 사시길 권면합니다.

 

인정하지 못하시겠다면, 더 이상 따르지 못하겠다면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역을 구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역은 누군가가 구현해낸 것입니다.

누군가가 구현 해놓은 것을 누군가처럼 따라하지 마시,

여러분만의 사역을 만들어 창출해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서

무엇이 두렵고, 누구의 눈치를 보며, 아닌것을 따르는 건가요?

 

알고 있다면 구현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구현하는 사역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사명을 이루어가십시오.

다음 세대에게 주님의 흔적으로, 표적으로 보여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이것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물려주지 못한 못난 선배여서

그러나 저는

당신에게 기대와 소망을 놓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이루실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변하고 행동해야 가능합니다.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해낸 다른 누군가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세상 일은 욕심을 버리더라도

주님의 일엔 누구보다 욕심을 내십시오.

 

그리고 꼭 기억하십시오.

지금 시대는 옛 것과 새 것이 교차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변해야 하고, 어떤 것을 더 발전시켜 나갈지 말입니다.

 

in His Time

in His Mind, in 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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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한다.

 

1) 어떤 메시지를, 어떤 사역의 형태와 방법을 가져야 하겠는가?

- 그런데 여전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호한 메시지 식상한 형태와 방법의 사역을 고수하는가?

 

2) 이 세상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 단지 분노하며 불만정도인가? 아니면 공감만 하고 판단만 하는가?

-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 사역자는 크리스천들의 리더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감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

  "교회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사역자가 변해야 교회가 변한다!!!"

 

3) 사역자들이 생각보다 사역의 준비가 훨씬 안되었음을 보았다.

- 현 상황과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위한 실제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그리고 생각의 변화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 많은 사역자들이 '현 시대의 변화와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없고, 문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에 빠졌었던 때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사역을, 똑같은 방법으로, 기계처럼 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2.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 분석을 해보았나?

- 현 시대의 외면, 그렇다면 포기할 것인가?

- 아니라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외면했다면 왜일까? 설득할 것인가? 설득은 될 것인가?

- 또한 대다수의 성도들이 원한다면 원하는 사역들만 할 것인가?(대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꼭 바른 것인가?)

- 현 시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으나 대다수의 성도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 과감히 기존 사역의 틀을 원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보지마라.  

- 그들은 단시간 내에 설득되지도 삶의 패턴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 즉, 생각의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바로 사역자인 우리가 가장 변화되기 어렵지 않는가?

- 기존 사역에 익숙한 성도가 아닌 다른 성도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역들이 있어야 한다.

- 변화는 새로운 사람들로 부터 시작될 때가 많다.

- 기존 성도들을 위한 사역은 지금도 넘쳐나고 있고, 많은 곳에서 혹은 나의 교회안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 나 또한 그곳에 굳이 동참할 필요는 없다. 변화를 원한다면 현시대에 필요한 사역을 원한다면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라! 대상을 바꿔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뭐하러 변화를 먼저 요구 하는가?

"변화만이 바른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통해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3)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 기획과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구상이 기획이다. 디테일한 기획안이 나와야 한다.

- 기존의 사역 형태와는 다른 생각의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기획 이것이 중요하다.

- 먼저 내가 원하는 사역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상상이 되어져야 한다.(이미지화 시킬 수 있는가?)

- 막연하게 생각하면 막연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것이 아닌 익숙하거나 유행하는 다른 이미지나 방법을 차용하게 된다.) 

- 기획이 끝나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월단위, 주간단위, 일단위로 세부적인 작성을 한다.

 

4) 중요한 것은 사역자가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 현, 한국 교회 사역의 한계는 목사(담당 교역자)가 모든 사역의 최종 결정권자요 실무자라는데 있다.

-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목사라는 역할은 그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사역이라는 이름하에 모든것을 다 잘 할 수도, 다 짊어지고 하게 해서도 안된다.)

- 한국 교회 사역의 또 다른 한계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소명과 사명(직업 등)이 고려된 것이 아닌 담임 목사 혹은 담당 교역자의 개인 적인 것만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함께 부르심 받은 공동체의 모든 지체의 소명과 사명이 한 목적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주신 비전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메가처치의 경우 이를 어떻게 반영하고 이루어 갈것인가? 그러니 잘못 된 방법과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 그때 각자의 달란트와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역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성도들의 직업과 연관이 없고, 모든 교회가 획일적인 모습과 내용을 가진 사역이 진정 성경적인 것인가?)

- 지역교회 건물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역, 지역교회의 이름을 걸거나 종교색을 드러내는 것만이 사역인가(행사같은 것을 하는 게 사역인가)?

- 말씀사역자, 다른 기능을 가진 사역자, 기획자, 교육자, 경영자, 디자이너, 예술가등 여러 분야의 성도들이 함께 각자 주어진 역할로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

  이런 모습이 세상 가운데에서 교회 공동체가 드려지는 삶의 예배요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습 일 것이다.

 

"사역자는 이런 전체의 그림을 보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말씀으로 가이드를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사역의 주체자도 주인공도 아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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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당신은 기존 사역자인가?

새 시대의 사역자인가?

 

그대여

예전과 그대로인가?

예전과 변화되었는가?

 

새로운 자극을 받은 것

새로운 경험을 한 것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과 상관없이

새롭게 변화되었는가?

당신의 생각이 그리고 말과 행동이

당신의 사역이

Creative한 작업으로 변화되었는가?

 

성령께서 이끄시는 뜻을 아는가?

이 시대를 볼 줄 아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을 아는가?

그들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아는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다가가며

어떤 것으로 제시하고 보여 줄지를 아는가?

 

작업 환경을 바꿨는가?

작업 방식을 바꿨는가?

작업 내용이 바뀌었는가?

작업 결과가 바뀌었는가?

 

의문이 없으면 답이 조종이나 통제로

고민이 없으면 도움이 간섭으로

배우려는 열망이 없으면 지도는 압박으로 느껴지는 것 일 뿐이라 한다.

 하지만 주류교회 사역은 의문을 품는 것을 반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정보)을 주어 납득케 하고 기술을 주어 통제케 하고

권력과 권위를 주어 정복케 한다.

 

요즘 미디어를 보는가?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움직이지 않던 그들이 왜 행동하는가?

 

더 이상 세상이 암담해지고 힘들어지는

부조리함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의 원인과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와 정책이 변해야 함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신의 이익이 피해를 보자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말은 다른 말로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개혁되고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땅의 크리스천만 제대로 살아가도 세상은 변한다.

 

이들을 제대로 살도록 가르치고 섬기는 것이

사역자의 일이고 그것이 사역이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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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색과 무채색

2014. 6. 13. 11:18 from My Thinking

 

오늘 이것저것 검색하며 온 라인을 둘러보다...

두 사람이 쓴 글들에 왠지모르게 마음이 갑니다.

 

이효리씨와 진중권씨의 글...

자신의 블로그에 이중적인 마음을 올린 이효리씨의 글에 공감을 했으며

변희재에게 충고하는 진중권씨의 글에 나도 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임에 동감했습니다.

 

똑 같은 나의 모습인데... 이중적인 모습을 봅니다.

내 마음안에 한 쪽은 감정대로 기질대로 하길 원하고

내 안에 또 다른 쪽은 배운대로 올바르게 인도하는 대로 하길 충고합니다.

 

죄를 짓고 처벌을 기다리는 사람인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다림인지... 

 

페북에는 올리지 못하는 속 마음과 감정들에대해

그래도 이곳 블로그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블로그는 이런 사적인 공간이 좀더 확보 될 수 있는 곳이어서 좋습니다.

 

유채색과 무채색 

색이 있기도 하나 없기도 한 지금의 나의 모습

어떤 것이 진정 나의 모습인지...

둘다 진실이고 내 모습이겠죠...

 

이런 마음에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하는 삶이 버겁네요.

죄송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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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와 첫차

2014. 5. 17. 23:08 from My Thinking

내가 타고 있는 열차 안에서

뒤에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본다.

 

나는 막차를 탄 것일까? 첫차를 탄 것일까?

 

나는 막차에 타고서 저 뒤에 오는 첫차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는 첫 차를 탔다고 생각하며

저기 보이는 저 열차가 두 번째 열차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두렵다.

내가 겨우 올라탄 열차가 막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굳게 믿고 다짐한다.

내가 탄 열차는 막차가 아닌 첫차임을

저기 보이는 열차는 두 번째 열차로 내가 타고 가는 열차를 따라오는

내가 기대하는 희망의 열차임을...

 

나와 함께 첫 차를 타고 가자한 이들은...

지금 나와 함께 저 작은 창문을 통해

두번째 열차를 바라보고 있을까?

 

열차를 자신 스스로 갈아타야만 하는데

생각만으로 타야지 하면서

여전히 예전의 열차칸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어떤 열차인지 모를 수도 있다.

표도주고 열차도 알려주었는데도 모르겠나부다.

 

어떤 이들은 아예 갈아탈 마음이 없는 듯 보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열차에 올라탔고

그 열차는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함께 탄 이들과 갈 수 밖에...

선로길이 다르니 가는 길도 다르고

앞으로 보여질 것도 다를 것이다.

가는 길과 보여지는 것이 다르니 하는 일도 다를 것이다.

 

마음이 참 아플것이다.

함께 타고 가야할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저 작은 창문을 통해 나와 같은 길을 쫓아오기에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일을 하게될

저 열차에 탄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야 할 것이다.

 

첫번째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에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침묵은 없다.

멈춤도 없다.

저기 우리가 도착할 푯대를 향하여

외치며 행동할 것이다.

 

 

 

더이상 말로만 합리화 하며 비겁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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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과 구명줄

2014. 5. 10. 20:33 from My Thinking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생명줄이 되라고 보내어졌다.

유일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진 줄이 바로 우리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험난하고 어렵고 힘든 곳에 보내어진다.

그래야 그곳에 있는 이들이

그곳이 끝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곳임을 알고

그 생명줄을 잡을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생명줄이 되려면

나의 구명줄을 먼저 잘라야한다.

내가 먼저 살고자 하면 다른 이를 살릴 수 없다.

 

죽어야 살게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원리가

그리스도인이 따라야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살았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려는가?

 

그가 오신 이유

내가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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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다쳤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진다.

허리가 아프니 숨을 쉬기가 만만치 않다.

몸도 자유롭지 못하고 일분일초가 버겁다.

 

그러나

나의 고통이 뭐가 대수인가 내 자녀와 같은 자식들이

지금 저 먼 바다에서 더한 고통속에 숨이 끊어질 것같고

움직이기 힘들고, 생사의 기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지금의 내 모습은 호사라는 걸 깨닫는다.

그들의 아비, 어미를 생각하니 같은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진다.

 

더한 고통과 억장의 무너짐을 아시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본다.

이 고난주간에 예수의 부활하심을 나는 알고 있기에

저 바다에 있는 자녀들의 생명을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간절히 간구해본다.

 

주님, 저들을 꼭 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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