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변화되려면 그러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옛 모습인 기존 생각의 틀과 삶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니 말이 안 됩니다.

 

몰라서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알려고 했다고요? 역시 변명입니다.

자신의 방법과 그 틀의 생각 안에서만 알려고 하지 않습니까?

 

대체 변하기 위해 뭘 버렸고, 얻기 위해 뭘 바꿨나요?

당신의 돈과 시간을 어디에 많이 쓰고 있나요?

당신의 중심이 지금 어디에 있나요?

 

사역을 직장처럼 여기고 사는 삶을

이제는 그만 사시길 권면합니다.

 

인정하지 못하시겠다면, 더 이상 따르지 못하겠다면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역을 구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역은 누군가가 구현해낸 것입니다.

누군가가 구현 해놓은 것을 누군가처럼 따라하지 마시,

여러분만의 사역을 만들어 창출해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서

무엇이 두렵고, 누구의 눈치를 보며, 아닌것을 따르는 건가요?

 

알고 있다면 구현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구현하는 사역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사명을 이루어가십시오.

다음 세대에게 주님의 흔적으로, 표적으로 보여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이것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물려주지 못한 못난 선배여서

그러나 저는

당신에게 기대와 소망을 놓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이루실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변하고 행동해야 가능합니다.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해낸 다른 누군가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세상 일은 욕심을 버리더라도

주님의 일엔 누구보다 욕심을 내십시오.

 

그리고 꼭 기억하십시오.

지금 시대는 옛 것과 새 것이 교차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변해야 하고, 어떤 것을 더 발전시켜 나갈지 말입니다.

 

in His Time

in His Mind, in 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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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한다.

 

1) 어떤 메시지를, 어떤 사역의 형태와 방법을 가져야 하겠는가?

- 그런데 여전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호한 메시지 식상한 형태와 방법의 사역을 고수하는가?

 

2) 이 세상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 단지 분노하며 불만정도인가? 아니면 공감만 하고 판단만 하는가?

-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 사역자는 크리스천들의 리더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감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

  "교회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사역자가 변해야 교회가 변한다!!!"

 

3) 사역자들이 생각보다 사역의 준비가 훨씬 안되었음을 보았다.

- 현 상황과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위한 실제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그리고 생각의 변화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 많은 사역자들이 '현 시대의 변화와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없고, 문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에 빠졌었던 때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사역을, 똑같은 방법으로, 기계처럼 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2.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 분석을 해보았나?

- 현 시대의 외면, 그렇다면 포기할 것인가?

- 아니라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외면했다면 왜일까? 설득할 것인가? 설득은 될 것인가?

- 또한 대다수의 성도들이 원한다면 원하는 사역들만 할 것인가?(대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꼭 바른 것인가?)

- 현 시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으나 대다수의 성도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 과감히 기존 사역의 틀을 원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보지마라.  

- 그들은 단시간 내에 설득되지도 삶의 패턴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 즉, 생각의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바로 사역자인 우리가 가장 변화되기 어렵지 않는가?

- 기존 사역에 익숙한 성도가 아닌 다른 성도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역들이 있어야 한다.

- 변화는 새로운 사람들로 부터 시작될 때가 많다.

- 기존 성도들을 위한 사역은 지금도 넘쳐나고 있고, 많은 곳에서 혹은 나의 교회안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 나 또한 그곳에 굳이 동참할 필요는 없다. 변화를 원한다면 현시대에 필요한 사역을 원한다면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라! 대상을 바꿔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뭐하러 변화를 먼저 요구 하는가?

"변화만이 바른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통해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3)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 기획과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구상이 기획이다. 디테일한 기획안이 나와야 한다.

- 기존의 사역 형태와는 다른 생각의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기획 이것이 중요하다.

- 먼저 내가 원하는 사역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상상이 되어져야 한다.(이미지화 시킬 수 있는가?)

- 막연하게 생각하면 막연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것이 아닌 익숙하거나 유행하는 다른 이미지나 방법을 차용하게 된다.) 

- 기획이 끝나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월단위, 주간단위, 일단위로 세부적인 작성을 한다.

 

4) 중요한 것은 사역자가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 현, 한국 교회 사역의 한계는 목사(담당 교역자)가 모든 사역의 최종 결정권자요 실무자라는데 있다.

-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목사라는 역할은 그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사역이라는 이름하에 모든것을 다 잘 할 수도, 다 짊어지고 하게 해서도 안된다.)

- 한국 교회 사역의 또 다른 한계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소명과 사명(직업 등)이 고려된 것이 아닌 담임 목사 혹은 담당 교역자의 개인 적인 것만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함께 부르심 받은 공동체의 모든 지체의 소명과 사명이 한 목적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주신 비전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메가처치의 경우 이를 어떻게 반영하고 이루어 갈것인가? 그러니 잘못 된 방법과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 그때 각자의 달란트와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역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성도들의 직업과 연관이 없고, 모든 교회가 획일적인 모습과 내용을 가진 사역이 진정 성경적인 것인가?)

- 지역교회 건물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역, 지역교회의 이름을 걸거나 종교색을 드러내는 것만이 사역인가(행사같은 것을 하는 게 사역인가)?

- 말씀사역자, 다른 기능을 가진 사역자, 기획자, 교육자, 경영자, 디자이너, 예술가등 여러 분야의 성도들이 함께 각자 주어진 역할로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

  이런 모습이 세상 가운데에서 교회 공동체가 드려지는 삶의 예배요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습 일 것이다.

 

"사역자는 이런 전체의 그림을 보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말씀으로 가이드를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사역의 주체자도 주인공도 아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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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당신은 기존 사역자인가?

새 시대의 사역자인가?

 

그대여

예전과 그대로인가?

예전과 변화되었는가?

 

새로운 자극을 받은 것

새로운 경험을 한 것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과 상관없이

새롭게 변화되었는가?

당신의 생각이 그리고 말과 행동이

당신의 사역이

Creative한 작업으로 변화되었는가?

 

성령께서 이끄시는 뜻을 아는가?

이 시대를 볼 줄 아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을 아는가?

그들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아는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다가가며

어떤 것으로 제시하고 보여 줄지를 아는가?

 

작업 환경을 바꿨는가?

작업 방식을 바꿨는가?

작업 내용이 바뀌었는가?

작업 결과가 바뀌었는가?

 

의문이 없으면 답이 조종이나 통제로

고민이 없으면 도움이 간섭으로

배우려는 열망이 없으면 지도는 압박으로 느껴지는 것 일 뿐이라 한다.

 하지만 주류교회 사역은 의문을 품는 것을 반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정보)을 주어 납득케 하고 기술을 주어 통제케 하고

권력과 권위를 주어 정복케 한다.

 

요즘 미디어를 보는가?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움직이지 않던 그들이 왜 행동하는가?

 

더 이상 세상이 암담해지고 힘들어지는

부조리함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의 원인과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와 정책이 변해야 함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신의 이익이 피해를 보자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말은 다른 말로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개혁되고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땅의 크리스천만 제대로 살아가도 세상은 변한다.

 

이들을 제대로 살도록 가르치고 섬기는 것이

사역자의 일이고 그것이 사역이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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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색과 무채색

2014. 6. 13. 11:18 from My Thinking

 

오늘 이것저것 검색하며 온 라인을 둘러보다...

두 사람이 쓴 글들에 왠지모르게 마음이 갑니다.

 

이효리씨와 진중권씨의 글...

자신의 블로그에 이중적인 마음을 올린 이효리씨의 글에 공감을 했으며

변희재에게 충고하는 진중권씨의 글에 나도 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임에 동감했습니다.

 

똑 같은 나의 모습인데... 이중적인 모습을 봅니다.

내 마음안에 한 쪽은 감정대로 기질대로 하길 원하고

내 안에 또 다른 쪽은 배운대로 올바르게 인도하는 대로 하길 충고합니다.

 

죄를 짓고 처벌을 기다리는 사람인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다림인지... 

 

페북에는 올리지 못하는 속 마음과 감정들에대해

그래도 이곳 블로그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블로그는 이런 사적인 공간이 좀더 확보 될 수 있는 곳이어서 좋습니다.

 

유채색과 무채색 

색이 있기도 하나 없기도 한 지금의 나의 모습

어떤 것이 진정 나의 모습인지...

둘다 진실이고 내 모습이겠죠...

 

이런 마음에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하는 삶이 버겁네요.

죄송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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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와 첫차

2014. 5. 17. 23:08 from My Thinking

내가 타고 있는 열차 안에서

뒤에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본다.

 

나는 막차를 탄 것일까? 첫차를 탄 것일까?

 

나는 막차에 타고서 저 뒤에 오는 첫차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는 첫 차를 탔다고 생각하며

저기 보이는 저 열차가 두 번째 열차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두렵다.

내가 겨우 올라탄 열차가 막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굳게 믿고 다짐한다.

내가 탄 열차는 막차가 아닌 첫차임을

저기 보이는 열차는 두 번째 열차로 내가 타고 가는 열차를 따라오는

내가 기대하는 희망의 열차임을...

 

나와 함께 첫 차를 타고 가자한 이들은...

지금 나와 함께 저 작은 창문을 통해

두번째 열차를 바라보고 있을까?

 

열차를 자신 스스로 갈아타야만 하는데

생각만으로 타야지 하면서

여전히 예전의 열차칸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어떤 열차인지 모를 수도 있다.

표도주고 열차도 알려주었는데도 모르겠나부다.

 

어떤 이들은 아예 갈아탈 마음이 없는 듯 보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열차에 올라탔고

그 열차는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함께 탄 이들과 갈 수 밖에...

선로길이 다르니 가는 길도 다르고

앞으로 보여질 것도 다를 것이다.

가는 길과 보여지는 것이 다르니 하는 일도 다를 것이다.

 

마음이 참 아플것이다.

함께 타고 가야할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저 작은 창문을 통해 나와 같은 길을 쫓아오기에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일을 하게될

저 열차에 탄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야 할 것이다.

 

첫번째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에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침묵은 없다.

멈춤도 없다.

저기 우리가 도착할 푯대를 향하여

외치며 행동할 것이다.

 

 

 

더이상 말로만 합리화 하며 비겁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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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Nex-6 n Leica summilux 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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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과 구명줄

2014. 5. 10. 20:33 from My Thinking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생명줄이 되라고 보내어졌다.

유일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진 줄이 바로 우리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험난하고 어렵고 힘든 곳에 보내어진다.

그래야 그곳에 있는 이들이

그곳이 끝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곳임을 알고

그 생명줄을 잡을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생명줄이 되려면

나의 구명줄을 먼저 잘라야한다.

내가 먼저 살고자 하면 다른 이를 살릴 수 없다.

 

죽어야 살게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원리가

그리스도인이 따라야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살았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려는가?

 

그가 오신 이유

내가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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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Nex-6 n Leica summilux 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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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다쳤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진다.

허리가 아프니 숨을 쉬기가 만만치 않다.

몸도 자유롭지 못하고 일분일초가 버겁다.

 

그러나

나의 고통이 뭐가 대수인가 내 자녀와 같은 자식들이

지금 저 먼 바다에서 더한 고통속에 숨이 끊어질 것같고

움직이기 힘들고, 생사의 기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지금의 내 모습은 호사라는 걸 깨닫는다.

그들의 아비, 어미를 생각하니 같은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진다.

 

더한 고통과 억장의 무너짐을 아시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본다.

이 고난주간에 예수의 부활하심을 나는 알고 있기에

저 바다에 있는 자녀들의 생명을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간절히 간구해본다.

 

주님, 저들을 꼭 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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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2014. 4. 14. 01:24 from My Thinking

교회는

모든 시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란

보편적인 의미와

그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와 친교와 가르침을 섬김으로 나누는 

지역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가

동시에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이미' 와 '아직' 사이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교회가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현재를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해야한다.

 

교회의 본질은 

종말론 적이면서

현세적이어야 한다.

(현재안에 실질적인 섬김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는

열심당원같이 세속적인 혁명주의자가 될 수 있고

사두개인같이 정치적인 기회주의자가 될 수 있고

 바리새인처럼 분리적인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주님으로 인정하며

그분의 말씀을 유일한 진리와 가치로 믿고

그 믿음대로 이 시대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실제적으로 봉사하고 도덕적 의무를 다하며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위해

세상안에 다양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섬기며 살아가는

교회다. 

 

 

 

Written n Photo by markerskim

Sony NEX-6 n Leica summilux 50mm

 

 

Posted by markerskim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안정감을 갖기 원하니까요.
어쩌면 많은 분들이 마커스에게 익숙한 모습을 기대하는건 당연한 모습일 것입니다.
예배모임을 주관하고, 예배 곡을 나눠드리고....

그 이전에 우리는 어쩌다.. 예배라는 이름이 붙은 사역과 콘텐츠에 익숙해졌을까요?
그것만이 우리가 향유하고 만들어야만 하는 유일한 것처럼 되어버렸을까요?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는 삶 자체이지만...
그 삶을 구성하고 누리며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배라는 형식과 내용에 한정된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만을 찾고, 좋아하고, 누리는 듯이 보여질까요?

우리는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분명 삶에서

다양하고 필요한 것들을 접하고 채우며 살아갈 것입니다.
올바른 것을 통해 얻지 못하더라도, 다른 것을 통해 그것을 얻게되고 충족하게 될테죠..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연기와 같아서 우리는 실제로 그것을

피부로 느끼거나 눈으로 보듯이 인식하지 못합니다.

현 기독교 문화는 어느순간 획일화된 모습을 갖게 되었으며, 문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삶이 문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문화를 단순히 수단화하고

세상 유행을 뒤쫓으면서 그것을 기독교화로 인정하려는 모습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교회안에서 누리고 향유되는 것은 예배라는 이름을 단 내용들만이 존재합니다.
혹은 전도라는 또는 선교라는 이름을 단 내용들 말이지요.

(이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단 실제로 내용은 그렇지 않고 이름뿐인 경우가 많아서 입니다.)

다른 문화적인 내용들과 영역에는
왜 관심이 없을까요?
왜 필요를 못 느낄까요?
그렇다고 무시하며 살지도 못하는데요, 분명 다른곳에서 충족하며 살아갈텐데요..

물론 기독교 문화 콘텐츠의 수준이 높지 않기에 외면당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단지 기술의 부족만이 아닌 내용의 수준도 너무 미흡한게 사실이죠.
다양한 삶의 부분을 조망해내지 못하고 단순한 주제와 표현 등...

기본적인 예술적 원리들을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죠.. 모든 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그것에 관심이 있는지,
그로인한 환경과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재정이 어디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을까요?
어디에 가장 많은 관심이 있을까요?
적어도 문화, 예술영역과 교육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미래를 준비해오지 못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과 기획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볼 줄 모르고,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개념싸움과 이익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력 다툼과
고착화된 권위의식이

지금 한국 기독교를 반영하는 이미지요 모습입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변화니, 개혁이니, 회복이니, 이런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성경에 기록되어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지요.
과거엔 어떠했고, 어떤 결과를 냈고, 누가 어찌했든, 중요한것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구현되고 살아야 그 진리의 말씀이 세상에 드러나보이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들이 자신이 부름받은 영역과 자리에서

직업안에 그것을 창의적으로 살아낼수 있냐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혼자만이 아닌 한 지체로 몸된 공동체로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섬겨주며 가능케할 수 있는 것 이냐는 말입니다.

더 이상은 누가 잘못했느니, 잘했느니, 누가 맞다느니 틀렸느니.. 이런 말뿐인 지적과 판단 싸움말고
하나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움직이고, 열어주고, 비켜주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마커스는 적어도 저희가 보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려합니다.
먼저 그 마음을 함께 품고 가길 원하는 동역자를 만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살아가길 원하는 주의 자녀들 말입니다.
그런분들과 함께 작은 변화라도, 작은 실천이라도 이루어내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마커스가 먼저 앞장서서 걷겠습니다. 제가 먼저 짐을 지고 가겠습니다.

그 시작을 B.W.C 에서 나누길 원합니다.
저희가 기존의 방식이 아닌 크라우드 펀딩형식으로 이 사역을 진행한 것은

지금 시대적인 흐름을 보고 기도하며 결정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기부와 헌금 방식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기독교안에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4월26일 BWC에서 나누길 원합니다.

 

저희에게 보여주신 것을 함께 보길 원하는 비전을 나누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아래의 링크로 가셔서 4월26일에 얼굴과 얼굴을 보길 기대합니다.

아니어도 많이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http://wadiz.kr/Campaign/Details/177

함께함이 기쁨입니다.
We're markers !!!

 

 

 

Photo by 구승회(FoLight)

Posted by markerskim :

???

2014. 3. 19. 18:32 from My Thinking

 

 

신학전공자는 무슨 활동을 하는 사람인가?

경제학을 전공하는 자들은 경제활동을

미술을 전공한 자들은 미술활동을 한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을 과학자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과학자이다.

(과학이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신학을 전공하는 자들은

모두 신학자여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목사는 무슨 활동을 하는 직업인가?

(어떤 분이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럼 무엇일까? 신분인가?)

 

예술분야는 학문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용적인 기술 이론이 있을 뿐

분석하고 체계화시켜 보편적인 기반인

학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기준과 결과물이 나와야 되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와 목사는 공통된 특성이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사역자는 무슨 활동을 하는 사람인가?

 

오랫만에 블로그에 쓸데 없이

내 머릿 속에 떠 다니는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붙잡아 적어본다.

 

조금은 부담스럽고

기분 좋은 글이 아닐지라도

(그런 분들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내게는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이라 적어본다.

 

 

 

 

 

뿌옇고 흐리게만 보일 뿐이지만....

 

 

 

written n photo by markerskim

Leica M6(summilux 50mm) and Rollei retro 100


 

 

Posted by markers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