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누워있는 너의 옆에 앉아, 잡아 본 너의 가녀린 손

유난히 얇지만 고운 머릿결을 다른 한 손으로 쓸어 올려주었지

 

언제 잠이 깨었는지 너의 감은 눈으로부터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내가 어깨를 토닥여 주자 너는 흐느끼며 울었지

 

너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고생만 시키는거 같아서....

 

많이 서러웠나보다.

지금 그 자리에 누워있는 자신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손을 잡아주고

너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밖에 없었다.


저 창밖에 저리도 많이 내리는 눈처럼

하얀 슬픔이 쌓인 나의 마음에 너의 눈물자욱이 새겨진다.

 

그리고


너와 함께 

마음으로

울었다.

.

.

.

.

.

.


성탄은 기쁨과 아픔 모두를 느끼는 것이겠지

너와 나의 2012년 성탄을 맞이하는 마음이겠지


감사하자




 

 

Posted by markerskim :

진심과 열심

2012. 12. 12. 13:39 from My Thinking



"진심과 열심"

마틴로이드 존스의 말을 인용하여 내가 만들어 본 말이다.

 

지금 세상은 아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위의 말은 힘이 있는 듯하다.

내 안에 진심과 그것을 위해 열심이 옳은 것이라는....


물론 이것은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내 안에 진심과 나의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그것을 "믿는"것이 기반이 되어야 할것이다.


12월

2012년의 마지막 달이다.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결정할 것을 결정한 후 내년의 계획을 세워가는 시기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나또한 '진심과 열심'만으로 달려오진 않았는지

내안에 진정 "진리와 믿음"을 기반으로 순종해왔는지


아무리 순수한 진심과 열심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목적을 잃을 것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방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게 닥친 혼란과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결심해야한다.

 

우리는 진심과 열심으로 헌신하려하고 헌신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없는 헌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지만

희생 없는 헌신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바로 그 헌신의 이유와 목적이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해보고 자심에게 물어보아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Posted by markerskim :



제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이곳은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썩은 곳입니다.

감히 이곳을 이렇게 과격하게 표현하게 됨을

그래도 이 썩은 곳에서 맑음을 유지하려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고여서 썩은 이곳을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서로를 헐뜯고 자신만이 옳다고 비난하고

말과 달리 권위적인 계급의식과 자만과 교만이 공존하고 각자의 조직단체의 소견만 존재합니다. 

이곳에서는 저곳을 향한 답이 없습니다. 답을 발견 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이들과는 도저희 공동체와 연합이라는 것을 이룰 수도

더 나아가 존재하거나 있을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 우리만은 아직 깨끗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실상은 이곳을 벗어나 저곳으로는 가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 말과 주장과는 달리 이곳만 보고 저곳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랬으면 이곳은 그렇다치고 저곳이 저렇게 방치되어 있을까요.


상식이 통하지 않고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고

진정한 평등과 균형이 존재하지 않고

다음세대를 위한 변화와 발전에 관심도 없는

저곳을 위한 전문적인 연구와 노력도 하지 않고 안주와 안일함에 익숙한

자신들을 위한 방식의 노력과 자신들이 아는것만이 전부인것인양 주입만 시키는 이곳


저는 이제 이 썩은 곳을 나가려 합니다.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문을 열고 저곳으로 나아가 그곳에서 행하겠습니다.

저곳과 저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말과 달리 자신들만을 위한 이곳의 사람들과 결별하고

배운대로 경험하고 깨달은 대로 그래서 믿음의 확신으로 품은대로

살고 행하고 가르치고 함께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려합니다.


이곳에 일은 신경쓰지 않고 저곳에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합니다.

저와 마커스는 이곳이 아닌 저곳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니까요.

여지껏 속았습니다. 이곳인줄 알고.... 아니 저곳을 위해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해야되는 줄 알고...

우리는 어느 누구를 판단 할 권리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통해 배울게 있다고 여기는 겸손만 주어졌습니다.

배우려는 자세와 겸손은 없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신물이 납니다.

이제는 흔들릴 일도 주저할 일도 신경쓸 일도 없습니다.

그저 주신 길위에서 주님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면 됩니다.


마커스는 이곳의 문을 열고 저곳으로 나갑니다.

제가 깨끗해서라기 보다 고여서 정체되서 썩고싶지 않아서 이곳을 나갑니다.

저희는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이 아닌 저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생각의 방법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in His mind , in His way






written n photo by markerskim

Leica M6(summilux 50mm) and Rollei retro 100



Posted by markerskim :


드디어 이 노래를 포스팅하는군요 되도록 안하거나 늦게 하려고 했던 곡입니다.


마커스 초창기에 쓰여진 곡이기에 그만큼 부족함이 많은 가사입니다.

이 가사를 쓴 당시에는 저희 마커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유명하지도 않았기에 편한 마음으로 저희안에서 불리어진다고 생각한 노래였죠.


제가 작사강의를 할때도 부족하고 여러 헛점이 많은 노래로 선택해서 분석하는 노래입니다. ^^


그래도 가사안에 담겨진 내용은 진정성이 분명 전달되고 있습니다.

마커스의 마인드와 제 개인적인 삶을 통한 신앙고백이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이 당시에 대부분 예배곡들은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가 드러나거나 

객관적이고 3인칭 시점의 노래가 많았습니다.(외국곡의 경우 번역이 되면서 이렇게 바뀐 경우도 꽤있었죠)

"부르신 곳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은유적 표현과 도약이 있는 가사입니다.

그래서 당시도 또 지금까지도 가사의 의미에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함이 많은 분들에게 신선하거나 새로운 감동과 은혜로 다가왔다고도 생각합니다.


분명 은유와 도약에서 주는 오해와 부족함이 있는 가사임을 인정합니다.

그 오해로 인해 성경 말씀에 근거해 잘못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음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분명 작사가인 저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가사를 창작했고 그것을 더 실제적으로 표현함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아버지께 분명한 고백으로 나아가는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노래들과 달리 한 프레이즈마다 부연 설명을 덧붙이며 가도록 하겠습니다.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성령님이 따스한 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써있습니다.(갈 5:22~23)

성령의 열매는 인격적인 성품을 말하며 흔히 인격이 훌륭하고 성품이 좋은 사람을 '따듯한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러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따듯한 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성화가 되어간다는 것은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따스한 분이라고 표현해 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내주해계시는 성령님을 머리가 아닌 마음의 중심으로 알고 보는 것이지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고백함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가사로 시작했습니다. 인격적이신 성령하나님을 성경에 기록된 표현은 아니지만 말씀을 근거로 표현했습니다.

저 표현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위배되어 성령님을 훼손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감정과 느낌만으로 또 그렇게 성령님을 표현했다는 지적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러한 태도로 저 가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우리가 마음 중심의 영을 통해 성령님을 바라보고 인도하심을 받으면 평안함이 주어집니다.(롬 8:6)

그 평안함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까요? 하나님이 창조해놓으신 감정등 몸의 지각과 상관없이 인식하는 걸까요?

분명 그 평안함이 주어지는 곳 생명과 평안의 근원은 성령님으로부터입니다. 생수의 강은 머리와 혼, 생각이 아닌 배에서 부터 흘러나옵니다.(요 7:38~39)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몸 즉 이성과 감성 그리고 감정과 육신인 몸을 통해 인식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프거나 기쁘면 어느 한 부분과 기관만 느끼나요? 나 자신의 전체로 느껴지고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은유적으로 평안함이 내 몸을 감싼다고 표현 한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저부분에 대해 잘 못되었다고 하시는분들께...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함을 어떻게 아시나요? 평안함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 하나님의 영으로 부터 온 생명과 평안함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절대 이방종교와 '도'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실체적인 기운을 말한 것이 아니며, 성령님을 그렇게 보고 표현했다는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고, 

그렇게 본다는 것이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은유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함에요...

이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충분히 행간을 읽고 은유적인 표현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쉬운 표현인데....


사랑과 진리의 한줄기 빛보네

내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그 사랑을 느끼네

여기서는 1절과 이어지는 고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녀들이 

주어진 말씀의 진리를 통해 살아가는 생명의 삶, 그 사랑과 기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이제 후렴으로 넘어갑니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X2

설명없이 쓰여진 가사만 본다면 앞부분의 파트가 아버지께 예배하는 상황의 고백임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르신 곳에서 예배하네라는 가사에 도약이 느껴져 어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이 당시에 작사가로 부족함이 많고 초짜 실력이 드러난 것이지요 


하지만 가사를 잘 들여다 본다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예배의 시, 공간은 특정한 시간에 드리는 회중 예배모임이나 

예배당에서 드리는 공예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겁니다.

그렇기에 앞부분의 고백에서 바로 예배한다는 고백의 표현이 나온 것이지요

하나님이 부르신곳이 내가 예배해야할 곳이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예배한다는 고백과 결단이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그 빛되신 진리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따라 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것 

어떤 곳이든 어떤 상황이던 그곳이 주님이 부르신 곳이고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예배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예배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표현입니다.(요 4:23~24, 롬 12:1~2)


이제 브릿지를 살펴보죠

내가 걸어갈 때 길이되고

살아갈때 삶이 되는  

그곳에서 예배하네 X2

이 문구의 표현은 스페인의 시인 '마차도'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후렴에서의 고백이 고조되어 결단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표현입니다. 

바로 부르신 곳이 예수님을 통해 내가 걸어가고 살아가는 길이고 삶인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고 살아갈때 성령님을 쫓아 가야하고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합니다.

하지만 분명 성경은 육신의 소욕을 따를 수도 성령을 따를 수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갈 5:16~23)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강제가 아닌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깨달아 따라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걸어갈 때 길이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내가 부족하여도 성령께서 분명히 그 길과 삶으로 이끄실 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예배드리며 고백하는 지금 더욱 나의 고백과 결단과 다짐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썼음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여러 헛점이 많은 가사입니다.(운율과 문학적 요소들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명확히 표현하는 부분)

그럼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 불리워 졌고 수 많은 선교지에서 선교사님에게 위로가 되었고 현지인들에게 동일한 은혜가 전달되었으며

전세계의 많은 나라의 교회에서 불리어지고 사랑받은 노래라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을 때 참 감사함이 많았습니다.

분명 부족하고 헛점이 많은 가사인데 이렇게 사용되어진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쓴 가사의 의도를 노래를 부르시며 공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여러 분들의 조언과 지적 충분히 그러한 오해와 우려가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더욱 그러한 것을 염두하고 기도하며 공부하고 가사를 창작하겠습니다.





부르신 곳에서(마커스 라이브워십 2집 수록곡)

작사 : 김준영 / 작곡 : 송은정 / 노래 : 함부영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사랑과 진리의 한줄기 빛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그 사랑을 느끼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x2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곳에 예배하네 x2



집에서 갑자기 떠올라 같은 앨범에 수록된 '날 향한 계획'과 함께 20여분 만에 쓰여진 가사입니다.

그러다보니 참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2009년의 그 당시에 여러 어려움과 상황 속에서도 마커스로 부르신 삶과 사역을 순종하며 살아간 매일의 싸움

그래서 지식만이 아닌 삶속에서 알아가고 자라간 저의 믿음의 고백 아니 모든 마커스 가족들의 고백을 

진정과 마음을 다하여 써내려가고 표현한 가사입니다. 





written and photo by markerskim

  



Posted by markerskim :

이제는 오래전(2009년)의 노래가 되어버린

"부르신 곳에서"


참 말도 많고 논란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은

예배곡이지요.


바로 요 노래 "부르신 곳에서"를

다음주에 업댓할  가사 묵상을 통해

솔직한 그리고 저의 진심이 담긴

가사에 대한 고백과 배경

그리고 평가에 대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저는 몰랐는데

저희 마커스 예배모임 클럽에 이 노래에 대한

의견이 올라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 가사 묵상을 시작하며 썼던 "비판과 비평"에 대한 의견

바로 그대로 말이 안통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태도로 쓰신 글이더군요.


목사님들 모두가 그러신 것은 아니지만

참 그분들은 신기하게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목사이기에 지적하고 판단하고 뭐라하는 태도를 취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일단 본인은 맞고 당신은 틀리다라는 확신속에 밑에 사람 대하듯 가르치듯 글을 쓰시니....

아무리 상대방이 틀렸더라도 그 의도를 물어보고 확인해보고 조언을 해야 맞지 않나 싶은데....

그것이 가르치는 아니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태도가 아닐까요?

정말 알려주고 가르쳐주기를 원하는 상대방을 위해 말이지요 사랑이 담겨있어야지요....


참 아쉽습니다.

이런 분들과는 아예 말을 섞지 않고 품어주는게 최고죠 ^^

(신학교에서 이런 성품 훈련도 시키고 그것에대한 기준을 세워 목사 안수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이러는 저 또한 제가 쓴 이 원리에 자유롭지 못한 부족한 자이기에 누굴 판단 하겠습니까...


여튼 담주에 최대한 빨리 업댓 노력해보겠습니다. ^^

평안하세요. 



Posted by markerskim :

쌀쌀한 가을엔

2012. 11. 12. 16:14 from My Thinking



뜨뜻한 차나 따듯한 커피

그리고 따스한 공간에 앉아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게 최고죠


LP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귀에 감깁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어 눈을 감고 

시간의 길위에 흐르는 음악이란 여정을 그녀와 함께 떠나 봅니다.


날이 춥다고 맘도 추워지면 안되겠기에 잠시 모든걸 내려놓고

여유를 갖는것도 필요하겠지요.



Photo by markerskim

Leica M6(summilux 50mm) and Kodak portra 400NC


Posted by markerskim :



이번 여섯번째 가사 묵상은 '이렇게 노래해'입니다.

이번 라이브 워십 5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이지요.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빠른 디스코풍의 노래로 굉장히 신나는 노래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곡의 가사가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다고도 하십니다.

그저 감정만 북돋아 진정한 고백이나 찬양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시겠죠.

그 말에 어느정도 공감을 합니다.

정작 가사의 흐름이나 내용을 본다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작사가인 제가 가사를 쓰게 된 배경과 설명을 조금 덧붙여 보려합니다.

이 노래는 멜로디가 먼저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라이브 워십 주제가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였기에 

빠른 템포의 신나는 이 노래에 어떤 가사가 어울릴지 듣던중

갑자기 마음에 떠오른 단어가 "이렇게 노래해, 이렇게 찬양해" 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라는 단어에 신선하다. 지금의 상황을 드러내주어 좋다.

혹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별 의미없이 행위와 감정만 북돋는다.

여러 의견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으시나요?

"이렇게"라는 단어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흘러나온 단어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영과 진리로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

바로 이런 예배를 드리는 순간과 상황을 표현한 가사입니다.

영과 진리로...  in spirit and in truth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영으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온세상의 주권자라는 진리안에서 우리는 승리의 노래로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두가지를 1절과 2절의 verse 파트에서 그리고

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그 기쁨을 이렇게 노래하고 찬양하라는 상황의 표현을 후렴에서 드러내었습니다.


이 노래를 찬양하며 가사의 흐름을 따라 고백하고 높이며 영과 진리로 노래하고 기뻐뛰며 

주님만 높이고 외치는 진정한 아버지가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노래해(마커스 라이브 워십 5집 수록곡)

작사 : 김준영 / 작곡 : 임선호 / 노래 : 마커스 싱어들



우리함께 소리 높여서

주행하신 일들 찬양해

어둔세상 빛이 되셨고

너와나의 삶에 평화를 주셨네


 이렇게 노래해 

 이렇게 찬양해

다같이 한목소리로 

주님만 외치세


우리함께 소리 높여서

주행하신 일들 찬양해

온세상을 회복 하신주

예수이름으로 하나된 자녀들


이렇게 노래해 

이렇게 찬양해

다같이 기뻐뛰면서 

주님만 외치세 



신나는 곡을 쉽게 고백하도록 가사를 간단하게 반복해서 썼고 부르기 쉬운 단어로 배치했습니다.

다른 가사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엔 특히 반복되는 멜로디로 인해 더욱 신경을 써서

음수와 음위를 통한 운율로 이를 더 살려주었습니다.






written by markerskim and photo by Lee young 

 


Posted by markerskim :


저는 성향이 분명하면서도 독특합니다.

보통의 만남정도의 친분으로는 3년을 만나도 저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듦니다.

그래서 분명히 어느 시기에 오면 오해가 생기게 되더군요.

강한 기질 때문에 비롯되는 오해가 대부분이죠. ^^

그 오해를 풀기위해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오랜시간 그것이 증명되는 

삶이 지나가야 풀리게되는 많이 지치게되는 시간들을 여러번 겪어왔습니다.


그런 세월을 겪어오면서 저는 이제 오해를 풀려하지 않습니다.

그게 제 진정한 마음과 모습이 아니기에 시간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는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을 때 마다 저는 나름 괜찮은데 집사람이 좀 힘들어했죠. ^^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잘못본거고 나를 잘 몰라서 그런거야 난 잘못별로 없어 기질이 그런거잖아

나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그런건데 기질때문에 그게 가려진 것뿐이라고..."


이것이 나의 변명이었고 스스로의 위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새로운 만남을 멀리하고 오랜 세월 저를 잘아는 사람들과만 깊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죠 어느 시기에 문득 말이죠

그 모습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저의 모습이란걸요....

그부분이 저의 작은 일부분일 수도 있고 저의 진정한 모습도 아니지만

그들이 보고 느낀 건 분명 저의 모습 바로 저란 사람이란 걸말입니다.

그 일부분도 저의 모습이기에 그 부분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뒤로는 오해를 풀기위해 노력은 안해도 진정을 담아 사과를 합니다.

오해는 풀려고 해도 안될때가 많기에 시간이 해결해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에.....


가사묵상글에 제 사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네요.

각설하고 이 모습은 제가 쓴 가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주저리 주저리 서론을 길게 했습니다.

저는 특별히 제가 쓴 가사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분명 저는 이유과 근거를 가지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사로 담지만

그것을 감상자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들만의 은혜와 감동으로 느끼길 원합니다.

저의 설명이 때로는 획일되거나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설명 없이도 저의 생각을 동일하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가사들은 논란이 되기도 하더군요

제게 질문을 해오기도 하지만 두리뭉실한 답으로 넘기곤 했습니다.

제 의도와 완전다른 해석과 논란이 있을 때는 위에 썼던것처럼 

그건 내 의도와 상관 없다며 그런 내용이 아니라며 그 사람들이 뭘 모르는 거라며 툴툴거리며 넘어가곤 했죠.

하지만 제가 어느날 저에 대해 깨달은 것 처럼 

그분들이 보고 느끼고 해석한 의미와 내용도 분명 제 가사가 보여주고 있는 부분임을 알았습니다.


전체의 내용과 의미가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부분의 모습이 잘못 해석될지라도 분명 그것은 저의 창작물이고 가사이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가사묵상 시리즈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가사를 쓰게된 배경과 주제 그리고 각 비유와 소재들의 의미들을 

창작자인 제가 원래의 의도와 배경을 알려주는 것이

공감의 획일화와 감동이 덜 한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더욱이 예배곡의 가사와 대부분 성경적인 내용을 바탕으로한 가사들이기에

더욱 이런 부분에서 정확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경과 의도가 숨겨져 있어서 발견하는 기쁨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못해 잘못 오해되거나 묻히는 노래들이 있었는데

바로 최근에 쓰여진 그런 노래중 하나가  "이렇게 노래해" 입니다.

곧 이 노래에대한 숨겨진 성경적 배경과 의도를 가사묵상으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

(자신이 발견하거나 느낀 내용이 제 숨겨진 의도와 같다면 기쁨이 두배겠지요?)




Posted by markerskim :



예고해 드린대로 이번에 함께 나눌 가사 묵상은 '주를 위한 이곳에' 입니다.

작년을 시작하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사사 시대를 생각나게 하시고 묵상케 하셨습니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이라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지만

정작 그 마음의 중심이나 내용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거나

자신들이 주인이 된 타락한 주의 백성과 자녀들의 모습

통치자로 우리 모든것의 기반과 기준이 되는 왕이

없으므로 자시들의 옳은 소견대로 행했던 그 시대...

바로 지금의 교회가 이러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다른이들을 보지 않아도 

저 자신부터 이 부분에 무릎꿇어 회개하며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예배의 형태나 화려함

그리고 인원수나 멋진 건물 수준높은 의식을 통한 것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원하신 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줄곧 우리에게 명하신 그 말씀이

다시 한번 제 마음에 강하게 내리쳐 꽂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모든 시대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해도

세상 가치관에 물들어 인본주의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팽배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주를 위해 무릎꿇고 영과과 진리로 예배하는 

그 한사람 단 한사람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고 머리숙여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혼란의 사사시대 이후에 사무엘이라는 인물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내가 되기를 또 우리가 되기를

이 나라 이 땅의 자녀들과 교회가 예배를 회복하고

모든 것이 주를 위한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가사입니다.

 

그분을 왕으로 통치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려는 그 한사람...

그것을 위해 기도해온 한나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져 사무엘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한나의 필요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한 이곳은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곳이고 그분의 뜻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떠나도

주를 위해 주님 앞에 홀로 무릎꿇고 울며 예배하는

그 단 한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를 위한 이곳에(마커스 라이브 워십 4집 수록곡)

작사 : 김준영 / 작곡 : 임선호 / 노래 : 함부영



주를 위한 이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에

그가 찾는 이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시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 그 예배자 

내가 그 사람 되길  

간절히 주께 예배 하네 


주 은혜로

이곳에 서있네

주 임재에

엎드려 절하네

그 어느것도

난 필요없네

주님만 경배해



이 노래는 가사보다 먼저 멜로디가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임선호군을 통해 만들어진 무게감 있는 이 멜로디를 반복해서 듣다가

새벽에 이번 주제에 맞는 말씀과 내용이 떠올라 빠른 시간안에 지어진 가사입니다.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편곡과 노래가 주제와 잘 어울어져 깊이있게 묵상하며 고백할 수 있는 곡입니다.


첫 파트의 가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비판적인 가사로 주의를 집중케함으로 

예배자의 자세와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기위해 강한 메시지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지는 뒷부분의 가사로 충분히 의도와 의미가 전달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후에 같은 앨범에서 맨 뒤에 배치된  Markers prayer로 이어지는 연속성 있는 노래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나이다.(삼상 2:2)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꼐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 3:10~11)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But the hour cometh, and now is, when the true worshippers sha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eth such to worship him.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 KJV)






written and photo by markerskim





Posted by markerskim :




다음주 초에 가사묵상 다섯번째 내용을 업댓할 예정입니다

노래는 "주를 위한 이곳에" 입니다


요즘 생각이 부쩍 많아지니 고민이 많습니다.

기도를 해야하는 데 생각이 많아지니...


시대를 살아가며

현실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해야할 사명이

감당 해야할 순종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누구의 탓도

환경의 탓도

일부분의 문제겠죠

대부분은

제 자신의 문제이니까요


안철수씨의 대선출마 선언

개인적으로 다른 이를 지지하지만 ^^

그의 출마 선언 연설의 내용과 방향성을 보니

저 밑에 흐르는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해결을 위한 큰 틀에 대한 접근도 그렇구요.

정치인 안철수로서 이 나라에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기대해봅니다.



이 나라 교회와 사역의 변화는

누가

언제

어떻게

이끌어 낼까요?


그러한 

기대라도 가져보게되는

믿음의 사람이 언제 나올까요?


답답합니다.

Posted by markers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