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선한 삶을 살 것인가? 선한 것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말은 늘 윤리적인 문제와 결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다른 중요한 질문들인 진리 즉 참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참되게 산다는 것은 선한 삶을 사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삶이 아름다운 삶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 사회 안에서 올바른 삶, 선한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공통의 기준과 질서를 제시하고 규제하는 법과 교리는 삶과 밀접히 결부 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와 연결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다.
법을 연구하고 해석해서 적용하여 집행하는 사람이
신학과 정경을 연구하고 해석해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윤리적이지 않다면, 윤리적인 문제를 고려해 집행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 관련 없는 법과 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마냥 법을 위한 법, 교리를 위한 교리, 종교를 위한 신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과 이론에 불과할 뿐이며 결국 이데올로기와 다름이 아니다.
법리적 해석, 교리적 혹은 신학적 해석이라는 말이 굉장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합리성을 갖춘 중립적인 기준으로 판단 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사회와는 따로 노는 지적 엘리트주의의 허영과 교만의 껍데기로만 보이는 것은 시니컬한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믿는 내용을 분리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신학적 실수 중 하나다.” _스캇 맥나이트(신약학자)
인생은 바라는 것을
‘되고’싶은 것으로 이루는 삶이 아니라
닮고 싶은 것으로 ‘되어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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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Thinking'에 해당되는 글 125건
- 2025.05.10 법리적? 교리적? 그들만의 오만과 착각
- 2024.11.06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3
- 2024.06.08 현실과 판타지
- 2024.05.15 둘 그리고 셋이 추는 춤
- 2024.03.22 이번 총선에 대한 생각 1
- 2024.03.09 명백한 해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 2024.02.15 나는 불행하다
- 2024.02.05 빛의 자녀 빚진 자녀
- 2024.01.19 무례한 사람들의 무뢰함 1
- 2024.01.17 영적이란, 인간적인 것이란 1
내가 읽었던 한강의 소설들은 나를 힘들게 한다.
글로 씌어진 그녀의 문장은 끝이 뾰족하다가도 뭉뚱그려져 있어 나를 찌르다가 누르기도 한다. 종종 얇은 채찍처럼 휘감아 치기도 했다.
어둡고 습한 표현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현실들을 그녀는 담담하게 써내려 간다. 그녀는 죽음을 써내려가며 살아감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힘들다. 읽고나면 아리다.
그러나 우리는 마주해야한다. 그렇게 직시하고 떠올리고 힘들어하며 느끼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문학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 믿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은 누군가의 개인의 아픔이다. 누군가의 슬픔은 때로 시대의 슬픔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야 할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또 되풀이 하면 안 될 책임이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또 내 주변의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기쁘고 밝은 면만 보고 누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생은 이 세상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어둡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한 사건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때 주위에 책임을 가지고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세상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래서 그 누군가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슬픔과 아픔 가운데 찢겨나가는 고통속에도 그에게 내일을 갖게 해주는 견뎌내는 것이 아닌 살아가가게 해줄 것이기에.

한강의 소설은 바로 그 누군가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나는 입안이 자주 헌다. 유전적 요인이어서 어렸을적부터 함께 해온 입안의 고통은 익숙했다. 그 중 혀가 헐 때 가장 아팠다. 음식의 어떤 맛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입안에 들어가는 어떤 것도 혀를 피할 수 없기에 고통이 자주 잘 느껴지는 부위다.
어느 날 처음으로 입 천장이 헐었다. 이제껏 느꼈던 어떤 고통보다 힘들고 아팠다. 왜지? 갑자기? 말할 때도 날카로운 아픔이 쑤셔대니 식욕 자체가 사라졌다. 치아까지 아파오는 고통에 참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 고통이 시작된 이유가 이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중이었다. 그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즈음에 통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저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과 미어지는 아픔이 늘 나를 감쌌는데 정말 그 때문일까? 내가 받은 아픔과 충격 그로인한 스트레스에 내 몸이 반응 한 것일까?

부모님 모두 전라도 분이시고 사촌들과 지인 중 5.18당시 광주에 있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래 전 들었고 알고 있던 부분도 있었지만 어느덧 세월이 꽤 흐르고 예전보다 철이 든 지금 읽고 접한 그 날의 일은 맑은 하늘의 가을과는 달리 여름날의 장마와 한 겨울의 차가운 고독함 뿐이었다. 그곳에서 그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데 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작별은 하지 않는다’를 구입하고도 책장에 꽂아둔 채 읽지 않았다. 또 아플까봐 그렇게 힘들까봐서….
다시 고통과 아픔을 몸으로 겪더라도 이겨낼 몸과 정신을 갖췄을 때 꺼내 보려했다. 곧 그럴 것 같다. 그녀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고 난 괜시리 뿌듯했으니까. 그리고 작은 기대를 갖게되었으니까. 누군가의 뼈저린 아픔이 많은 이들에게 나뉘어져 이제는 조금은 이제는 조금이라도 그들이 ……

주위에서 특히 SNS를 보면 판타지적 삶을 사는 이들을 종종본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것 같다.
이는 크리스천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이들에게도 점점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들의 표면의 삶을 보면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듯 보인다. 또 이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표면에서 껍질을 한꺼풀 혹은 두꺼풀 들쳐보면 실제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길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이런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를 온전히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에서의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삶의 규모가 스스로의 규모와 많지 않기에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살아가가게 된다. 이런경우 대부분 스스로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다른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다른이들에게 수고와 뒷처리를 떠안기게 된다.
아직 아이와 같은 미숙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다.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과잉과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어른 성숙한 어른이라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족한 이들 아직 미숙한 아이들을 도와주고 서포팅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자기의 자원을 스스로에게만 (주로) 쓰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섬김으로 나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누구나 미숙한 아이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성인이 되었음에도 미숙한 아이로 판타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디지털 세계가 더욱 현실감을 잃고 실제와 동떨어져 살아가게 이들을 내몰고 있다.
기억하라 언제나 자유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주어진 것들에 질문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프더라도 피상적인 삶이 아닌 깊이 들어가는 길을 찿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늘 고통이 동반된 일이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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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인 수준에서 상호정보(상관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입니다”
_카를로 로벨리
모든 관점은 내부적이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엄밀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사물의 총체에서 바깥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다. 나라는 내부(정신)에서 얻은 외부적 물리적 정보를 연결하는 것을 의미라 본다면 내 관점에서 총체적 사물을 종합하는 것, 즉 사실의 총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요구되며(이를 지향성이라 하자) 이것이 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을 드러내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너 즉 자신과 타자 사이에는 서로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관 관계(상호작용)를 가지고 있고 제3의 대상에게는 이것이 상대적인 정보로 얽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오로지 셋이 얽혀 주는 춤으로 드러나는 세상이 아닌가? 이는 오직 현실의 일부인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되며, 두 대상의 상관된 정보와 관찰자의 상대적 정보가 얽혀서 지금 이순간에 만들어져 사라져 버리고 새롭게 생성되는 역동적인 세계라는 말일 것이다.(현실은 개체의 속성이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만 결정되며 그 관계속에서만 그 의미가 해석된다.)
“모든 시각은 부분적입니다. 관점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을 보는 방법은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시점이란 존재하지 않죠. 그러나 시점들도 서로 소통가능하고, 지식은 다른 지식과 현실과 서로 대화할 수 있으며, 그렇게 대화를 통해 수정되고 풍부해지고 수렴되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깊어집니다.(사물은 다른 사물속에 비친 것일 뿐입니다.)“ _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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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정당 지지를 넘어선 투표여야 한다.
보통 선거때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정당 선호도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정 정당인도 아니고 현재 지지하는 정당도 없다. 그러나 막상 선거기간이 되고 투표를 할 때 최우선 고려가 어느 정당이냐라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권은 정말 역대 최악의 정권으로 선두를 다툴만하다고 여겨진다. 대통령감에 한참 못미치는 이가 대통령이 된 것도 큰 일인데 대부분의 참모들과 행정조직의 장들 또한 마찬가지다. 각 분야의 전문인력보다 대통령 개인의 친분과 검찰출신의 인물들로 채워지다 보니 나라 꼴이 가관이다.
특히 정치검찰들이 평소에 국민을 어떻게 여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2년의 시간이었다고 본다. 나랏일은 제대로 돌볼 마음도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능력도 관심도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그러니 이번 총선이 예전과는 다른 선택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당과 상관없이 일단 현 정권에 대한 전폭적인 국민적 경고가 필요하며 대대적인 심판의 칼날을 겨누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깜작 놀라며 스스로의 자리와 권력 유지에 불안감을 가질 정도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 이는 검찰조직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은 정당이어도 이번에는 정권을 향한 경고와 심판의 칼을 겨누는 선거이어야 하고 그러한 투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정말 나라가 엉망이 되고 이를 회복하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재정이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결국 누가 감당하겠는가? 평범한 국민인 바로 우리다. 기득권 세력들 대부분은 그 감당을 우리에게 떠 넘기고 자기들은 책임지지 않을게 뻔하다.
그러니 여당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야당을 선택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았으면 한다.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경고는 야당이 이번 선거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더라도 이 결과가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겸손히 국민들의 요구를 위해 투쟁하고 쟁취해야 할 것이다. 반사이익으로 얻은 기회를 이번에는 허무하게 날려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한 모습때문에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얼마전의 교훈을 이번에는 꼭 잊지 말기를 바란다.
모두들 이번 선거 빠지지 말고 꼭 투표합시다 !!!
정권 심판과 나라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진심으로 싸우고 열심히 일할 사람과 그 정당을 선택합시다 !!!
국민을 지 아랫것이나 종으로 아는 자들, 무지하고 그저 속이면 속고마는 멍청이로 아는 자들에게 혼쭐을 내 줍시다 !
#22대총선 #선거 #투표 #정권심판 #이게나라냐

“명백한 해체”
제니 오델은 그녀의 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말미인 결론 부분에서 이 명제를 언급한다.
기존의 진보의 개념과 이를 상징하는 인공물을 해체하고 원래의 것으로 돌리려는 작업, 이는 현재에서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자연의 원래의 흐름으로 되돌리는 노동의 현장이요 창조라고 말한다. 목적이 없는 목적. 그저 창조원리 그대로 내버려두나 주의깊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태도.
어쩌면 나는 (이러한 철학과 개념은 아니었지만) 나름 굴곡진 삶의 자리를 마주함으로 기존의 살아가는 모습과 추구하던 방식을 해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해체라기 보다는 살아온 세월의 허무함과 회의로 인한 부정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명확한 개념으로 지금의 내 태도와 방식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명백한 해체’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파편처럼 흩어졌던 비전의 조각들을 원래 자리로 맞출 수 있도록 새롭게 밑그림을 보여준 그녀와 이 책에게 고맙다 전하고 싶다. 더불어 이 책과 하나로 연결되어 명확한 모습을 그리게 해준 로마서 7~8장, 본 회퍼의 <나를 따르라> 그리고 사랑하는 예학당 21기 제자들의 3주간의 아트미션은 잊지 못할 기억의 자리로 남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계획안에 이루어진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분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더욱 따라 살아가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듯 살아가자. 막연함은 바로 기대를 품은 기다림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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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인간의 삶은 불행하며 나 또한 그렇다.
늘 선하고 바르게 살고 싶으나 내 안에 탐심은 늘 내 의지에 승리한다. 이것이 현실이니 나는 늘 부끄럽고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미워하거나 나쁘다 하는 그들과 다를바 없는 내 자신을 보며 그들이 나보다 못하다 그들은 죄인이라 말 할 수 있는가? 그들이 저지른 잘못이 내가 저지른 잘못과 다른 것이 무엇이며 그들이 행한 잘못을 내가 행하지 않을 근거가 어디 있는가! 그들과 다를바 없기에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용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행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거나 자신이 불행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다. 적어도 자신이 불행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악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의식하는 자는 복되도다! 그는 불행을 가져다 주는 죽음의 이편에 서서 어둠의 경계 건너편의 생명과 빛을 발견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러하다.
불행과 부정의 존재임을 깨닫고 의식하는 자는 스스로 뛰어 넘을 수는 없으나 구원자를 통해 경계의 틈 사이에 놓여 연결된 다리를 볼 수 있게된다. 그리고 사랑을 실은 초대에 이끌리어 죽음이라는 경계 이편에서 빛을 따라 저편으로 건너간다. 영원한 세계와 그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받은 자는 새롭게 주어진 생명과 행복을 누리는 존재로 완전히 변환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사는 동안의 현실은 여전히 부정이고 불행함이 크게 뒤덮은 인생이다. 이러한 존재인 나는 무엇을 바라고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나는 늘 비참하고 곤고한 자이며 나를 빛으로 이끄신 그분의 도움을 늘 바라고 겸손히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불행을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가는 나와 너를 위해 이 세계의 모든 생명과 물질을 위해 죽음과 생명의 분명한 경계를 가르고 유일한 길을 연결시키기 위해 오신 그분, 그가 오신 이유를 다시 되새기며 내가 살아갈 이유를 다짐해본다.
나는 불행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불행함을 의식하기에 오히려 나는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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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 빚진 자녀
빛의 자녀인 우리는 빚진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값없는 은혜에 빚진 자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사는 자이다.
은혜를 아는 자는 빛 가운데 사는 자이다
호의를 권리로 아는 자는 교만한 자요
호의를 은혜로 아는 자는 겸손한 자다
우리는 빛의 자녀요 빚진 자녀라
빛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은 호의로 베푸신 은혜에 늘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살면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받은 그대로 호의를 베풀며 사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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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들은 딱 질색이다.
그들은 본인들이 일도 잘하고 똑똑하고 배려있다 여기지만 그들의 친절과 배려는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자신 위주와 자기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상대방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해 해도 본인 스스로 배려와 친절이라 여긴다면 상관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상대의 감정과 느낌을 알지 못한다. 상대가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로 상대와 다른 이를 바라보기에 자신이 그렇다면 상대도 당연히 그러리라 여긴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문제점과 상대방의 솔직한 감정을 설명해 주기란 꽤 어렵다. 자신감이 넘친 자만의 몸에 친절과 배려라는 겉옷으로 두껍게 무장한 이들은 자신들이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그래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나오는 행동과 내뱉는 말들이 상대에게는 꽤 무례하게 느껴진다.
내가 만나오고 경험했던 이런 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와 경제 수준을 갖춘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무뢰하지는 않으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무뢰함과 다를바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늘 이런 이들을 만날 때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그 무례함을 받아 준 후 조용히 그 관계를 멀리 한다. 뭐 미리 의식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내가 멀리함을 느끼는 순간 관계가 틀어졌음도 알게 되겠지만,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고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으면 뭐하나? 난 무례한 이들은 질색이다. 지금 그들 주변과 환경은 언젠가는 대부분 꺼지고 말 거품일 뿐이다.
공평하지 않고 편파적이며 존중할 줄 모르고 무례하며 사랑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이들은 딱 질색이다.
눈은 세상 어디나 공평하게 내리고, 눈이 오는 세상은 이렇게 평안해 보이는데. 눈 같은 이로 살고 싶다. 첫 눈처럼 너에게 가는 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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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영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고
영적인 세계는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오늘이다.
살다보면 시간은 흐르고 그날은 온다.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일상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을 잘 사는 것이 가장 영적이고 훌륭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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