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hinking'에 해당되는 글 125건

  1. 2012.06.25 비평에 대해 ② 2
  2. 2012.06.23 미안하다
  3. 2012.06.17 비평에 대해 ①
  4. 2012.06.07 고민하던 연재물 시작 4
  5. 2012.03.19 노(老) 목사님의 기도 1
  6. 2012.03.09 내가 수애다.... 7
  7. 2011.12.09 블로그 사용법 3
  8. 2011.09.19 야구 보러 가고 싶다 1
  9. 2011.09.07 과거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쓰다. 2
  10. 2011.08.28 이 시대의 사역자들에게...



3. 기독교 예술 비평과 현실


여기서는 본인이 주로 다루고있는 음악이란 영역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보려고 한다.


물론 "기독교 안의 음악들과 책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을 만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성경을 묵상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여러 공부와 기도 가운데에 깨닫고 얻어진 내용들을 직설적이 아닌 그 안에 예술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나타내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 말은 올바른 교리와 신학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분별하며 음악이라는 영역만의 방법으로

성령님을 통해 깨달은 바를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바 그대로를 음악적인 가사로 표현하려고 했다.

(다른 분들이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 본인이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이러한 노력해왔고 이 노력들을 통해서 가사를 써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수준이 아직 이것밖에 안된다.)


때로는 꽤 많은 분들이 너무나 쉽게 드러난 가사만으로 신학도 모르고 음악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쟁이로 

치부하여 평을 내리실 때가 많기에 그렇다. 우려하시는 대부분은 고려하고 감안해서 쓰여진 가사들이다

그것을 발견해주기를바란다. 그리고 그 다음에 부족한 부분과 좋은 부분 모두를 평가해주시기를 바란다.


특별히 예배 안에 쓰여지는 음악은 예술적 가치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식의 의견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드러내놓고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방식과 누리는 방법을 보라)

예배음악은 예배라는 목적과 음악이라는 형식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예배라는 이름아래 음악이라는 특성이 무시되거나 짓밟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학이라는 잣대만으로 음악을 난도질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단, 예배음악은 분명 예배를 위함이고 가사의 내용과 음악적 형식 모두 철저히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맞춰야한다.)


만일 목사님들이 제 가사에 의견을 제시하신다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예술과 음악이라는

영역에 대해서도 공부하신 후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다.

(때때로 '신학을 전공하면 모든 지식과 기반을 다 아는 것인듯' 말씀하시는 분들을 볼때마다 당황스럽다.

이는 중세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을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

대체한 사상이 여전히 흘러오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한다.)


성경을 통한 신앙의 내용을 '음악'이라는 그리고 '예술'이라는 영역으로 표현할 때 

바라봐야할 중요한 '형식'과 '내용'들이 무엇인지 그래서 '예술과 작품을 감상하고 누릴 실력이 있는 지'를

먼저 '아는 것'과 이를 '갖추는 것'은 비평을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모든 예술 원리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만큼 성경에서 말하는 구현되는 원리를 볼 수 있어야 겠다.

(정말 죄송하지만 교회음악을 전공한 것이 예술과 음악에 대해 성경적인 올바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과 꼭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예술과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 못하는 것이다.

아니 일차원적인 겉으로 드러난 직접적인 표현자체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그래서 이원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표현될 때 그것이 무엇을 위한 비유와 은유인지 전체 맥락 안에서 어떤 상징과 매개역할을 하는지

전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소재가 왜 그렇게 쓰여 졌는지 전혀 파악을 못하는 것이다.


상상력이 없기에 메마르게 되며 삶에서도 창조적인 적용이 없는 것이다.

어떤 분의 글 중에 상상을 매우 위험하고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을 하신 분을 보았다.

상상 없이 어떻게 성경에 쓰여진 말씀을 유추하고 생각 할 수 있단 말인가? 상상과 공상이나 환상을 구별 못하는 것 같다. 

(상상 없이 어떻게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에 증거인 믿음을 삶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인가?)


한국교회 안에서 위대하고 다양한 예술가가 배출되지 못하는 현실

단순히 교회의 하부문화로 질 낮은 작품들만이 만들어지는 현실

음악이란 영역이 한정된 예배모임에 적합한 형태와 목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부를 수 있는 장르만 인정받고

누려지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본인은 분명 예배가 아닌 예배모임이라 칭했다.)




4. 결론


꽤 많은 분들이 마커스 라이브 워십 앨범이 나올 때 마다 어려워서 교회에 쓸 만한 곡이 없다고

앨범이 안 좋다고 평한다. 어떤 분들은 편곡이 너무 무난해 쓸 곡이 없어 앨범이 안좋다고 한다.

그 평의 기준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궁금하다.(아예 예배 자체를 놓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불특정 다수의 회중 경배와 찬양의 형태로 실제 예배모임을 녹음한다는 것을 고려해보셨으면 좋겠다.


음악이란 것이 만인에게 불려지고 사용되어야만 훌륭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예배모임에 쓰여야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인가?

모든 이들에게, '대중에게 적합해야 한다는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와 '미국식의 실용주의'와

'인본주의적인 평등'이라는 가치로부터 나온 생각이 아님을 자신할 수 있는가?

보편적이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적합해야 좋고 옳은 것이라는 기준 말이다

저 깊고 오랜 세월 교회에도 침투해온 인본주의적 세계관에 지배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리'란 그리고 '옳고 좋은 것'이란 꼭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부터 '창조적인 다양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인본주의적인 보편성'은 '획일화'를 낳는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해 내야만 한다.)


지금의 '교회 문화와 신앙의 형태'가 '획일화' 되고 있는지 '창조적인 다양성'이 있는지

지금 이순간 자신의 삶과 교회를 바라보며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비판하고 비평해봐야 할 것이다.


음악이란 아니 예술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선물은 선물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고유의 특성대로 창작하고 누리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그것이 주신분의 의도이고 목적이며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것을 위해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있음을 그러한 영역의 사역자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이 담긴 글임을 그리고 그러한 공간임을 이해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진솔하고 좋은 글들로 연재들이 이어져 나가길 바라며 첫 번째 연재를 마무리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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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2012. 6. 23. 22:47 from My Thinking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정호승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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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summilux 50mm) and Rollei Retro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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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연재로 먼저 비평에 대한 개인 소견으로 첫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이 글은 앞으로의 연재에 대한 나의 바람과 견해를 드러내는 글이다.


미천한 수준과 소소한 의견인 나의 글에 앞으로 여러 의견과 비평이 있을 줄 안다.

나는 그러한 의견들을 소중히 받아들일 마음이 있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눌 준비도 되어있다.

단,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견해에 대해서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다.


이곳은 어떻게 보면 만인에게 열려있지만 나 개인만의 소통 공간이기도 하다.

주인장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는 분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을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나는 나와 다른 '방식'을 말했지 다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의견들 그리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충고들을 나는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다.

단, 다시한번 반복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틀이 있다고 여겨지네요 ^^;) 

정확히 말하면 틀이라기 보다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 하고 싶다.


바로 오늘은 이것과 관련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먼저 비평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놓음으로서 

앞으로 이것을 기준으로 대화의 대상을 분별하고 가릴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1. 비판과 비평  

 

한국과 특히 한국 교회는 비판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비판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언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비판'이란 단어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비판자체를 하지말거나 그러한 견해를 취하지 말라는 주장은 대체 무엇인가?

성경을 진리라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누구보다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만이 온전한 비판을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바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반인 성경이 주어졌고 그것을 진리라 믿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 비평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와 흐름에 대해 올바른 비판과 자신만의 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편견에 의한 비난을 하게 되고 이것을 비판이라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비판을 부정적인 언어로 받아들인 것이다.

비판을 할 실력이 없기에 비평이 아닌 편견에 의한 비난을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사이트의 글들에 비평이라 불리며 올라오는 편견에 의한 비난들을 접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글들인지 난감하고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글로는 사랑하기에 관심이 있기에 계속 중보 하겠다고 하면서 

편견을 가지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편견에 의한 비난은 자기증명으로 자신을 세우고 상대방을 짓밟는다.

'나만 옳고 당신은 틀리다'식의 논리만이 요구되며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위해 상대방을 짓밟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상대방을 위함이며 사랑하기에 쓰는 글이고 진정한 비평인가?


오늘은 특별히 부족하나마 가사라는 작품과 볼품없는 글을 끄적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술영역의 사역자로 살아오면서 가지고 왔던 

예술과 작품 비평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2. 예술 비평에 대해서(작품에 대한 견해)


하나의 예술작품을 비평 할 때는 어느정도의 수준과 조건이 요구된다.

(작가와 남에게 드러내는 비평과 리뷰 등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평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만이 아닌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거나 드러낼 때는

스스로 그럴만한 수준을 갖추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나름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실력과 수준이 있는지 말이다. 

편협한 지식으로 전체를 평가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예술품이라는 것을 평가할 때는 과거와 현재에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과 

그에 따라 추구된 사회와 제도를 볼 줄 알아야하고

예술이라는 영역의 고유한 특징과 표현되는 방법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올바른 세계관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겠다.

(즉,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는 틀을 통해 인간과 예술을 보는 시각을 말한다. 예술은 그 시대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작가에 의해 글로 쓰여 진 하나의 문장과 화가에 의해 그려진 표현은 

아무렇게나 자신이 느끼는 대로 비평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표현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그것을 위해 역사와 사상과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려 노력하고 고뇌하며 만들어낸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예술품이 이러한 특별 성을 꼭 지닌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이런 부분에 달란트를 부여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들의 역사와 오류는 바로 인간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것은 틀렸다고 억누르며 내 세상만이 이세상의 천국이라 믿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려고 그 기반을 자신만의 지식인 인간 이성에 두었다는데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세상이 아닌 '이청준 작가'가 그의 소설에서 말한 대로 당신들의 세상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었다.


....



다음 연재에 계속 이어서 한번더 이에 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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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연재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할만한 실력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연재할 시간이 되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빠르면 다음주부터 

주간단위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예술이라는 달란트와 은사를 받은자로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역자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사역을 하면서

고민하며 생각해왔던 부분들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님을 통해 깨달은 내용들


너무나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썼던 가사를 중심으로 풀어보려합니다.


가볍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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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老) 목사님의 기도

2012. 3. 19. 13:43 from My Thinking


17일 토요일
아는 지인분 따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주례를 원로목사님이 하셨는데
80대 중반의 
노(老) 목사님이 20대 부부가 될
커플에게 주례를 한다는게 조금 신기했다.

그러나
결혼 예배가 시작되고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례말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진정성이 있었고
오랜 세월 살아오신
그분의 삶에서 나온 조언의 마음이
나의 가슴을 적셨다.

특히
마지막 축복기도를 해주실 때
그 사랑과 축복의 마음이
너무나 깊이 느껴졌다.

연세가 들어 흔들리는 목소리였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힘이 있었고
손자, 손녀 같은 그리고 믿음의 후손에게
진정한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깊게 담긴 기도내용에
나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한 평생을 주를 위한 목사로서 살아오시며
인생의 황혼기에 서계신 
노(老) 목사님의 모습
그리고
여전히 총기가 넘치시는 위엄있지만 자상한 말씀
(어른에게 총기란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그저 무엇이든 어떤것이든
주어진 본인의 일에
목회자로 믿음의 선배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그 모습
정말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 믿음의 길을 따라가는
후배인 내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기에
나의 황혼의 삶 또한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없이 가식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하고 축복해주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과 기쁨을
전하는 통로로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로서...

지금도 이 글을 쓰며
차오르는 눈물은
무엇때문일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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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ica M6(summilux 50mm) and Fuji reala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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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애다....

2012. 3. 9. 23:40 from My Thinking




며칠전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려고 칫솔 꽂이를 보니?
내 칫솔만 없는 것이다. 잉???

한참을 찾은 뒤에 화장품 옆 잡동사니 넣어놓은 통에
떡하니 꽂혀있는 칫솔을 발견!!!
아니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한거야?
울분을 토하며 집사람에게
누구 짓이냐고 하소연을 했었다.
(물론 그녀는 황당한 표정으로 답을 했지만)

어제 아침 나는 그 범인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양치질을 한 후 너무나 자연스럽게 칫솔을
화장품옆 잡동사니 통에 꽂아놓고 있는
나 자신을 순간 인식하고야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내가 도제체 왜? 여기다? 무슨짓을?
ㅠㅠ

오늘 집에서 출출해서 간식을 먹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먹으러 주방에 컵을 가지러 갔다가
싱크대 좀 정리하고 내가 아까 사용한
커피 기구를 설겆이 하는 동안
나는 정작 내가 무엇때문에 그곳에 갔는지를.....

나름 상쾌하게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다시 간식을 먹는 자리로 온 순간
나의 감각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목 마르다구 !!!!
제발 입을 통해 물좀 넣어주라구 !!!!

아!!!
ㅠㅠ

나의 기억은 어디로 간것인가?
흘러만 가고 흘러오지는 않는가?
잠시도 머물지 않는가?
불혹의 나이란 이런 것인가?
ㅠㅠ


내가 수애다.
된장 십팔년산 8 등신


그래도 지인이의 예전 그림을 보니 
양쪽 입가가 살포시 올라가는 구나
왼쪽이 나라구 !!!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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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사용법

2011. 12. 9. 13:20 from My Thinking




누구는 블로그를 일기처럼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자신의 신세한탄용으로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자기 과시용으로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취미 생활로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지식 저장소로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홍보용으로 쓰고
누구는 블로그를 관계와 소통용으로 쓴다.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짜증이 나고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걱정이 많아지고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상업사이트에 온것 같고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포장된 가식을 느끼고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무엇인가를 얻게 되고
어떤이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누군가의 블로그는 가기 싫어지고
어떤 이의 블로그는 자꾸 가고 싶어진다.

나의 블로그는 어떤 방식으로 쓰여지고
다른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걸까? 
대체 나는 왜 블로그를 하는걸까?
대체 누구를 위하여 블로그가 있는걸까?
대체 무엇을 위하여.... 

중요한건 중독이 되면 안된다는 것....
SNS에 중독된 지금 시대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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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보러 가고 싶다

2011. 9. 19. 17:46 from My Thinking



올해는 가을 야구에 진출하면 꼭 보러가려 했는데
역시나 고질적인 뒷심 부족으로....
실망을 마구 안겨주는 구나

이노무 엘지야
버리고 버리려 해도 청룡시절부터
함께해온 나의 마음이 붙잡고 있으니....

아들이랑 목이 터져라 응원좀 해야는데 말만하고 데려가질 못하네
이 녀석 처음으로 간 야구장이 다저스 스타디움이라
실망안할까 모르겠네 ^^;

메이저리그 구장이 좋긴 좋더라 완전 부럽 ㅠㅠ, 하지만 우리나라 야구장이 재미나지 ㅋㅋ

엘지야 정신좀 이제 제대로 차려라!!! 이런지 벌써 10년이닷!!! 

잠실 야구장 이렇게 되기전엔
확 안가버릴까부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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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냉정한 사람이다.
마음에서 정리하고자 마음 먹으면 정말 깨끗이 정리한다.

물론 이렇게 까지 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나의 짧은 인생가운데 몇번 있었다.

최근 나는 어느 한 사람을 내 인생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냥 내 삶에서 없는 존재로 말이다.

너무나 깨끗이 정리하는 나의 모습에 내가 두려웠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알아왔던 한 사람을
한번도 본적없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버릴수 있을까?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이제 내게는 저 멀리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로 들린다.
바로 내옆에 있는 누군가와 벌어지는 일인데도....

이런 일이 있기까지 힘들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안한건 아니다.

오늘 안철수씨의 시장 불출마 선언 기사를 보았다.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한다는 내용.
내가 바랐던 시나리오였는데 기쁘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몇번 글로 대화를 나누었던
박원순 변호사를 나는 지지한다.
물론 그의 행정능력이 탁월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이땅에 미래를 내다보고 건전하고 옳은 제도와 삶의 기반을
만들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 믿는다.
안철수씨의 용기있는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아직 세상에는 무엇이 옳은지가 존재하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것을 지키려하고 펼치려하는 용기있는 자들이 있다.

새로운 희망을 본다.
무엇이 이루어질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아직 그러한 희망과 소망을 품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이땅에 존재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알아온 사람을 내 삶에서 지우고
내가 잘 모르는 사람으로 인해 삶에 희망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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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순응하며 사는
것 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제 난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러한 인간들을 거스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 환경과 돈은 문제가 아니다.


'
세상'이란 단어를 교회의 반대의미로 사용하지 마시라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을 이분
법적으로 만들어 놓는 인간들이 문제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상가운데 세우시고 세상에 동화되지 않게 만드셨는데

지금은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에 동화된 교회가 되었다
.



연합을 단지 관계로만 이해하고 시스템을 단지 기능에 관련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당신은 연합을
하기가 힘들 것 이다. 그리고 연합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지금 시대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눈으로 연합에 대해 말하는 성경을 다시보라


연합은 시스템이다
. 좀 더 풀어 이야기 하자면 연합의 모양은 시스템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없이 연합한다는 것은 연합의 말과 개념만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연합된 모습을
시스템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연합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되도록 분명한 사인이 올 때까지 난 기다리는 편이다.


여러 나의 삶에 시행착오 끝에 얻은 귀한 경험이다
. 하지만 내 안에 명확하게 사인이 온 순간


나는 불도저같이 밀어 붙인다
. 결단은 바로 실행해야 됨을 또한 삶으로 배웠다.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결단과 실행이 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여러 상황과 환경의 공격을 받
게 된다.


기도한다고 하지만 생각을 하게 될 뿐이고 여러 조건 속에 나의 뜻만이 지배해 갈 뿐이다
.

 

기도를 했다면 그 명확함이 더욱 뚜렷해져야 하는데 점점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명확함이 올 때 까지 기다렸고 그 명확함이 왔는데 무얼 망설이고 재고 있습니까?

공격의 틈을 주지 마시고 바로 결단하고 행동 하십시오 !


함께, 저 푯대를 향해 달려갑시다 !!!





 

                                                                                                                                            To,  이 땅의 사역자들과 크리스천

                                                                                                                                                      From,  그렇다고 다를바 없는 무익한 종

Posted by markers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