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선한 삶을 살 것인가? 선한 것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말은 늘 윤리적인 문제와 결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다른 중요한 질문들인 진리 즉 참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참되게 산다는 것은 선한 삶을 사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삶이 아름다운 삶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 사회 안에서 올바른 삶, 선한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공통의 기준과 질서를 제시하고 규제하는 법과 교리는 삶과 밀접히 결부 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와 연결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다.
법을 연구하고 해석해서 적용하여 집행하는 사람이
신학과 정경을 연구하고 해석해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윤리적이지 않다면, 윤리적인 문제를 고려해 집행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 관련 없는 법과 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마냥 법을 위한 법, 교리를 위한 교리, 종교를 위한 신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과 이론에 불과할 뿐이며 결국 이데올로기와 다름이 아니다.
법리적 해석, 교리적 혹은 신학적 해석이라는 말이 굉장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합리성을 갖춘 중립적인 기준으로 판단 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사회와는 따로 노는 지적 엘리트주의의 허영과 교만의 껍데기로만 보이는 것은 시니컬한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믿는 내용을 분리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신학적 실수 중 하나다.” _스캇 맥나이트(신약학자)
인생은 바라는 것을
‘되고’싶은 것으로 이루는 삶이 아니라
닮고 싶은 것으로 ‘되어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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